일상

기차 타고 담양 여행

아날로그맨🐳 2024. 1. 25. 17:08

제부도에서 산책을 통해 얻은 마음의 환기가 귀해서 또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할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죽녹원이 눈에 들어왔다.

 

광주역에서 죽녹원에 가는 버스가 20분 마다 한 대씩 있다니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죽녹원으로 낙점하였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여정도 맘에 들었는데 마침 그 전날 눈이 내렸다 하니 설경의 대나무숲은 더 근사할 것 같아 바로 기차표를 예매하였다.

 

죽녹원만 둘러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담빛예술창고가 죽녹원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출발하는 기차를 첫차로 바꾸어 시간을 좀 더 넉넉하게 두었다.   

담양의 유명한 소쇄원은 뚜벅이로서 하루 일정으로 소화하기 어려워 보였다. 

 

수원발 광주행 첫 차 시각이 7시 3분이니,,, 기차를 타기 전 거쳐야 할 버스와 지하철 아무것도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긴장, 불안감 때문에 알람시각을 5시 20분으로. 출근할 때보다 더 빨리 일어나도록 ㅋ

여기에 무릎담요까지 챙겼다 ㅋㅋ 준비도 약간 지나친 듯 ㅋ

책가방이 커서 그냥 담았는데 담부턴 책은 한 권만, 텀블러도 최대 2개까지만 넣어야겠다.

 

서두르는 게 늦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긴 하지만, 수원역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버렸다 ㅋ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탔다. 

반갑다 무궁화호야!

광주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4시간인 것도 맘에 든다.

더 천천히 달려도 된단다.

 

천안역부턴가 눈이 내렸다. 전 날 눈이 와서 눈쌓인 풍경을 보려고 했던 건데 감사하게도 또 눈이 내려주었다.

책을 읽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백양사 역 이름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날 속으로 감사인사를 여러 번 했다. 

 

걱정없이 보낼 수 있는 여유있는 시간에 대해

좋은 의욕에 대해

건강한 몸에 대해

마침 내리는 눈에 대해

 

다행히 옆 자리는 평택역까지인가만 누군가 있었고 그 이후로는 비어 있어서 가방도 옆에두고 좀 편했다. 

잠을 너무 적게 자서 자려고 했으나 몰아치는 잠은 오지 않고 잔 듯 안 잔 듯 눈만 감았다.

광주역에서 갈만한 식당이라는 진식당에서 돌게장 정식을 먹었다.

혼밥으로도 된다.

돌게장이 맞나,,, 박완서 선생님 소설에서 어린 시절 돌게장 맛있게 먹은 썰을 어찌나 군침 돌게 푸셨던지...다 지난 일이었어도 넘 부럽고 먹고 싶어했었는데 말이다.

 

내 어린 시절의 음식은 갈치와 꼬막.

기름에 튀겨진 고소한 갈치 몸통을 반으로 뚝 잘라서 뼈를 기준으로 한 쪽 살을 발라먹고 나머지 한쪽 살을 먹을 때에는 뼈를 손잡이 삼아 먹으면 더 맛있었다. 꼬막은 조개껍질 째 손으로 집어 살을 앞니로 빼먹었는데, 앞니가 빠졌을 때 꼬막 못 먹겠다고 놀림 받아 진심으로 분해했었는데 말이다. 형편껏 맛있는 음식을 어린 자식들에게 열심히 해주셨던 엄마께, 부모님께 참 감사할 일이다.   

 

돌게장 몸통껍질에 붙은 고소한 내장을 싹싹 긁어서 밥에 비벼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돌게장 몸통이 4개나 있다.

 

죽녹원으로 가는 311번, 311-1번 버스 같은 거는 버스도착알림안내판에 표시되는 노선이 아니었었다.

주변 광주시민에게 여기에 311번 버스가 오는 게 맞는지, 20분에 한 대씩 오는 게 맞는지, 버스 색깔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맞다는 대답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가 맞은편 도로에서 311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완전 안심하고 기다렸다.

 

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 걸린다니 버스 승차 후에는 한동안 마음 편하다.

 

드뎌 죽녹원에 도착.

눈이 내린다 ㅎㅎㅎ

 

입장권을 끊는데 매표원이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하신다.

오예!!

 

 

 

죽녹원 설경도 좋았지만 바람과 대나무숲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내가 찍었지만, 카메라를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고요한 정취를 다 망쳐버렸다 ㅋ

 

죽녹원 산책하면서 서너번 미끄러졌다.

조심할수록 더 넘어지는 거 같다. ㅋ

 

죽녹원에서 나와서 달빛예술창고를 찾아 걷는데 동네 사람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께 길을 여쭤 보니

지금 거기로 걷기 운동 가는 길이라며 따라오면 된단다. ㅎㅎㅎ

 

해남에서 태어나서 일 한창 많이 하실 나이까지는광주에서 사시다가 담양에 정착하신지는 20년쯤 돼셨다던가... 올해 77살이라고 하셨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 7살 아들이 안 보여 찾으니 돌멩이 나르기로 지원 사격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10여 분 정도 걷는 동안 담빛예술창고에 도착하였고 할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시려면서 광주역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버스에서 내려서 광주역까지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께 가장 감사했던 것은 나에게 "학생인가, 아가씬가" 라고 하신 질문이었으니 ㅋㅋ 정말 내가 나이들었나보다. 

 

 

담빛예술창고는,,, 정말 혼자 오기 아까운 곳.

단 한 가지 실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것.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곧 대추차를 발견하였는데 주문을 바꾸기에는 바로 사장님께서 아메리카노를 제조하는 소리가 들렸다. ㅠ 아메리카노의 맛이 성에 차지 않아서 대추차가 더욱더욱 아쉬웠다. 

그래도 정취를 감상하며, 일일숙제를 수행하며, 친구들에게 자랑 카톡을 보내며 만족스러웠다.

 

 

 

스피커는 에스테론이던데 좋은 건가?? ㅎ

나도 오디오맨인가 괜히 뒤에 가서 작은 글씨를 샅샅이 살펴보며 아는 착을 하게 되었다. ㅎ

책장 사이로 파이프 오르간은 주말에 실제로 연주회가 있단다.

멋지고 우아한 곳!

 

담빛예술창고 전시회도 관람했다.

 

 

 

듀크 조던의 flight to denmark 앨범 표지가 떠오른 관방제림 풍경 사진.

 

광주역 가는 시간에 늦지 않게 나왔다.

 

담양을 떠나며 관방제림의 고요한 풍경을 아쉬워 하며 눈에 많이 담았다.

담양은 죽녹원을 일순위로 생각하고 온 곳이었는데 담양달빛창고 카페와 전시관, 관방제림의 고즈넉한 정취가 더 마음에 들어왔다.

 

올 때는 새마을호.

옆 자리가 내내 비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테이블 넓게 쓰니 좋았다.

 

아랫배를 따땃하게 하겠다고 핫팩을 바지춤에 끼워 고정하고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가 문득 배가 간지러워 벅벅 긁으며 깨어났다. 긁다가 좀 이상해서 살피니 핫팻이 있던 자리에 저온화상을 입은 거 같고 긁으면서 피부가 벗겨졌다. ㅠ

집에 와서 씻고 피부약을 바르긴 했는데 마찰할 때마다 쓰라리다. ㅋ

핫팩 조심히 써야하는구나.

빨리 딱쟁이가 생겨서 내 피부를 보호해 주거라. 

 

오늘 실컷 자고 깨어나니 여독이 실감난다.

죽녹원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흔적인지 근육 뭉친 느낌도 조금 나고 말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