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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동물원 -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by 아날로그맨🐳 2023. 12. 17.

어제 본가가는 길 버스에 있는데 울린 당근 알람.

 

 

 

동물원, 시인과 촌장을 들은 안목이 있던 분께서 내놓는 8, 90년대 엘피 박스째 무료 나눔!!! 

와! 나는 이 알람을 거의 동시간으로 확인했다. 

바로 채팅을 걸려는데 설정 지역을 바꿔야 한단다 ㅠㅠ

재빨리 설정 지역을 바꿔 채팅창에 글을 쓰는 사이 "예약중"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 아까워라.

마치 내 것을 빼앗긴 것 마냥 아깝다.  

 

저 안 보이는 엘피들 중에 동물원, 시인과 촌장의 다른 앨범들이 있으면 어쩌나. 김성호, 조덕배, 여진, 박영미  등등의 앨범들이 있었을까봐 너무너무 아깝다. 아까워하다가 그만 버스에 장갑을 놓고 내리고 말았다. ㅠ

 

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은 금세 되었다. (물론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있는 음반도 충분히 많다. 있는 음반이나 잘 들어라. 있는 음반을 충실히 듣는 것이 낫다. 

저 보이는 음반들이 가장 귀한 음반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ㅎㅎ 

 

소중한 음친 님께 상황 보고를 하며 넋두리하니 많이 공감해 주어서 위로가 되었다.  

 

아깝게 놓친 당근 엘피 대단한 무나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며...

동물원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가 오랜만에 듣고 싶어 구승 오빠가 만들어 준 시디를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다. 듣다가 같은 시디에 수록된 정원영, 한상원이 리메이크 한 석양도 들으며 감탄한다. 

 

===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밤새 어둠 속에 떨어지다 잠에서 깨면
오래 창을 열어 두어 내 한숨을 몰아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인사말은
요즘 사는 게 어때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아직도 나는 소년처럼 여린 까닭에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 조금은 낯설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우울할 때
내가 성숙해졌나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내가 본 소설 속에 기억나는 말은 자유로워지는 것
오늘 아침 만났었던 친구에게 못 다한 말은
다시 좋은 일은 없을 것만 같아


희미해져만 가는 바램을 가지고
햇빛에 달아 오른 길을 혼자서 걸어갈 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인사말은
요즘 사는 게 어때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나도 또한 그 말을 되물었을 때
어색하게 그냥 미소만 짓는 친구와 헤어지고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우울할 때
내가 성숙해졌나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지나간 대화 속에 기억나는 말은 자유롭게 되는것
오늘 아침 만났었던 친구에게 못 다한 말은
다시 좋은 일은 없을 것만 같아 

 

===

 

생각해보니 싸이월드 시절에도 이 노래가 좋다며 가사를 옮겨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화자가 자기연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덧붙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렇게 자기연민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연민 좀 있으면 어떤가 나는 안 그런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도 참 변하지 않으니 내 삶도 몇 가지 대주제를 가지고

단조롭게, 혹은 겨우 단조로움을 면할 정도로, 가끔은 즐겁게

꾸준히 변주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겠구나 싶다.

 

문득 안부라는 공통점 때문에 장기하의 별 일 없이 산다가 떠올라

"다시 좋은 일은 없을 것만 같아" 라고 말하는 화자와 "별 일 없이 산다"라고 말하는 화자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전자는 웅크리고 후자는 뾰족하다.

주변인에 대한 시선이 전자는 나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후자는 나를 깔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거 같다.

그래도 둘 다 겁많은 청년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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