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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보를 걷는 동안

by 아날로그맨🐳 2023. 11. 30.

당근에서 정경화의 콘 아모레 성음 발매반이 2만원에 올라왔다.

CD로 장만한 음반인데 CD로도 무척 좋긴 하지만 명성이 자자해서 LP로 살 걸 그랬나 싶은 음반이었다.

 

당근으로 걸린 채팅이 3건이 이미 있었고..

 

음반의 상태를 확인하며 구매 의사를 밝혔더니 대답이 늦어 초조했다.

조금 후 현재 확인은 불가하지만 예전에 들을 때 문제 없이 들었던 음반이라고 하시면서,,

반품은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조건이 좋은 거 같아 별 고민없이 수락했다.

거래 장소는 퇴근길 조금 돌아가면 되는 정도이니 괜찮았다.

 

거래 장소로 가는 길.

핸드폰이 갑자기 방전되었다.

하.... 50% 넘게 배터리 남아 있었는데...

 

내 폰.

오래 사용한 후진 폰.

추운 날에 갑자기 꺼지길 잘 하는 폰.

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이라는 사실은 늘 닥쳐서야 상기된다는 것.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핸드폰은 켜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거래장소를 10분 정도 남겨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와서 보조배터리에 연결해서 핸드폰을 회생 시키고 판매자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약속 시간을 늦추어 다시 나갔다.

그나마 보조배터리를 충전해 놓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드디어 거래 장소에 도착하여 도착 문자를 남기니 잠시 후 판매자께서 내려오셨다. 

판 상태를 확인해 보라고 하셔서 보니 먼지가 뽀얗다. 먼지야 닦으면 된다.

훈훈하게 거래를 성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있을 일 때문이 아니라 나는 판매자가 우아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목소리와 말투와 하얀 머리가 우아하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정리를 하고 음반을 듣는데.

세월의 더께가 숨겨지지 않는다. 

 

자작나무 타는 거,, 다른 사람 음반에서 타면 낭만적인데 내 음반에서 타면 음반을 닦고 싶어지는 이중성이란...

엘피는 중고든 신품이든 첫 청취는 신경이 좀 곤두서는 게 큰 단점이다.

양품이라는 확신이 든 이후에야 진짜 감상이 시작된다. 

 

당근에서 온 이 음반은 자작자작 타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탁탁 소리와, 그 소리를 만든 흠집까지 발견하자 이거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전환되었다.

 

판매자께 설명을 하니 다행스럽게도 반품을 받아주신단다.

날이 어두우니 내일 오라고 하신다.

 

저녁 8시면 도착할 수 있겠어서 오늘 갈 수 있다고 하니

나의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함을 알아주시고 오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다시 거래장소로 걸었다.

엘피 재생 동영상으로 보여드리고, 카톡으로도 집에 와서 연결하여 보내드렸다.

 

2만원을 돌려받고 음반을 돌려드리자 대강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지세요, 괜찮은 부분 들으세요. 추운데 왔다갔다 고생하셨네요."   

 

뜻밖의 호의에 고마운 마음뿐... 고마운 마음뿐이다.

반품 안 받아주면 당근후기 나쁘게 써야지 생각도 했었던 내가 한없이 초라해진다. ㅋ

 

세상 사람들이 다들 나보다 너그럽다.

따뜻한 마음에 기대어 추운지 모르고 다시 집으로 걸었다.

달이 아주 밝고 가까웠다. 

 

다시 콘 아모레를 돌린다. 

이번에 들을 때에는 잡음도 그리 거슬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예상하였는데 잡음이 많긴 많다.

 

그래서 오랜만에 엘피 빠는 중이다. 

 

당근 판매자님 감사합니다.